임진왜란 3 - 이순신의 출격과 왜군의 약탈
신립의 패배 이후 급하게 북쪽으로 도망가는 선조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첫 승전 소식을 안겨준 것은 이순신 장군이었습니다. 즉, 선조의 인사 정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고 할만합니다. 유성룡에 따르면 승전보를 듣자마자 선조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사실은 그저 희소식 정도로 끝난 게 아니라 조선 전역에서 의병을 끌어모으는 일종의 선전물 역할을 톡톡히 해 줍니다. 바로, 우리 장비로도 왜군을 무찌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줬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참으로 비상한 것이 전쟁을 글로 배운 양반만 90% 이상 있는 나라에서 오직 혼자만 한국 역사상 (조금 과장하면 세계 기준으로도) 최고로 평가받아 마땅한 수준의 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신형 전선인 판옥선을 다수 건조하고 주요 섬에 위치한 거점들의 보수를 아주 확실히 하는가 하면 (똑바로 안 한 병사들은 정도에 따라 곤장을 치거나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거의 유일하게 규율을 갖춘 군인을 훈련시켜 두었습니다. 다른 지방에서는 과거에, 성 보수에 백성들을 동원하면 농사 망칠 일이 있냐고 도리어 역정을 냈고 특히, 수군은 워낙에 일이 힘들어서 (노 젓기, 배멀미, 짐 나르기 등 때문에 기피 병종이었습니다) 소집 명령에도 불참하는 식으로 규율이 엉망이었으나 악조건을 딛고 강군 양성에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는 조선군의 400KM에 걸친 릴레이 도주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순신 장군은 한탄을 금치 못 했습니다.특히 조선 내에서 가장 큰 수군의 수장인 경상우수영의 원균도 달아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셨습니다. 이 일이 원균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계기 가운데 하나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침착하게 도주병들을 잡아오고 전라양도에서 수군들을 소집하고 (일부 군관들이 집으로 도망가서, 잡아와 목을 베어가며 규율을 유지했습니다) 승리에 취한 왜군에게 쓴 맛을 보여주며 돌아다니십니다. 이렇게 몇 달 정도 두들겨 맞고 나니 일본군이 겁에 질려서 이젠 조선 수군만 보여도 허겁지겁 도망다니기 바쁘고, 조선 수군이 공격 태세만 취했다 하면 전부 배에서 내려서 해안가 요새에 틀어박혀 버립니다. 하지만 육군이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무너졌다는 소식에 장군은 또 한숨을 쉬고, 더더욱 온 힘을 다해 왜구를 찾아서 바다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역으로 장군의 연속적인 승전에 해상보급경로가 끊긴 왜군은 민간에 대한 약탈을 더 강하게 하기 시작합니다. 수도를 점령하고 전쟁을 끝내자! 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적질로 변형되어 버린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서도 이걸로 점령지(=전라도,평양이북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부)는 거의 초토화가 되어버립니다. 전후에 농지가 30% 수준만이 남았다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약탈하고 다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