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자 윌리엄'에 해당되는 글 2건
- 2023.08.21 :: 윌리엄 이야기 3 - 한편 영국에서는
- 2023.08.15 :: 윌리엄 이야기 2 - 북방인들은 왜 배에 올랐나
여러 귀족들이 경쟁하느라 난장판이었던 프랑키아 쪽과 달리
브리튼 제도에는 이미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의 정체성이 성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문제도 있었으니...
유럽 대륙내에서 명목상 교황 휘하의 여러 나라가 치고 박은 것처럼
'잉글랜드'라는 대륙 내에서 국왕 휘하의 여러 나라가 치고 박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권력을 잡으려면 라이벌 가문은 물론이고 형제끼리 등뒤에 칼을 꽂는 건 일상인데다
패배하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전재산을 들고 주변국으로 튀어버리는... 문화가 있었다.
(스포일러: 덴마크가 정복한 후의 지도라 잉글랜드가 덴마크로 표기되어 있다)
지도에 나온 것처럼 수틀리면 동서남북 아무데로나 도망치기 딱 좋긴 했다.
여담으로 스코틀랜드 아래의 저 조그마한 스트라트클리드 왕국은 긴 역사를 가졌으나
딱 이 시기에 망하면서 사실상 잊혀진 게 불쌍해서 이름 정도 불러주고 지나간다.
잉글랜드인들이 지들끼리 등에 칼 꽂는 동안 덴마크, 노르웨이 출신의
북방인들은 또 신나게 여기저기 약탈하고 놀고 있으니 나라 상태가 아주 개판이 되어버렸다.
이 시기 잉글랜드 국왕은 '준비되지 않은 에텔레드'가 맡고 있었다.
(Aethelred the unready; 사실 Æþelræd Unræd는 '적절한 조언을 받지 못한 에텔레드'라는 의미지만 Unræd의 발음이 '운레드' 라 언레디랑 비슷해서 저렇게 불리게 되었다)
이 양반은 선대 잉글랜드왕들과 달리 전쟁, 정치, 외교 모든 영역에서 너무 재능이 없었다.
북방인들과 몇 번 붙고 박살난 후에, 조공을 바치면 북방인들이 돌아가 주니까
Geld(겔드)라는 세금을 신설해서 적당한 군대도 유지하고 조공에 쓰일 자금을 마련했다.
당연하지만 군대 빌려가더니 박살난 왕놈이 세금을 더 뜯어가니 귀족들은 폭발했고
어차피 안 싸워도 조공을 받기 시작하니 점차 1+1 느낌으로 북방인들은 약탈도 하고 조공도 뜯어갔다.
그 와중에 에텔레드는 신앙의 힘으로 신의 재앙을 이겨내자면서 교회에 기부를 늘렸다...
그러던 중, 북방을 통합한 스웨인이 영국사에 등장한다.
그림처럼 정복할 만한 곳은 다 정복한 그의 다음 타겟이 영국이 된 것이다.
(롤로가 노르망디 공작이 된 것에서 모티브를 얻어 자기도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다행히도 에텔레드는 나름대로 첩보를 입수해 급히 전선을 건조하고 해군을 준비했다.
말 많던 겔드를 군대양성에 거의 올인해 예산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서로 칼 꽂는 귀족들, 겔드에 대한 불만, 무능한 국왕에 대한 의심이 한 번에 터져
해군 내에 내전이 발생했고 군대의 절반 이상이 자기들끼리 싸우다 자멸해 버렸다.
잉글랜드가 혼자 삽질하는 동안 스웨인의 군대는 요크에 상륙해 물밀듯이 진군해 오기 시작했다.
에텔레드는 마지막 필살기로
"신앙심으로 극복하자!"를 다시 한 번 시전하고 교회에 돈을 더더욱 갖다 바쳤다...
당연히 상황이 해결될 리 없었고 잉글랜드의 몰락 직전에 정신이 돌아왔는지
그의 아들 에드워드와 알프레드를 급히 처남에게로 피신시켰다.
그곳은 바로 노르망디였으며 다가올 불씨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아직 에텔레드는 모르고 있었다.
참고로 에텔레드는 싸우다 전사하긴 개뿔
런던 근처까지 적이 당도하자 와이프랑 같이 자기도 노르망디로 도망쳤다 ^오^
도망은 잉글랜드의 유구한 전통이니까~
조선왕 선조를 런조니 하면서 무능하다고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글의 에텔레드와 비교해보면 살아남은 나라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텔레드 | 선조 | |
신하들이 싸우고 있었는가 | O | O |
전쟁에 대비를 했는가 |
O | O |
군대 내부에 문제가 생겼는가 |
O | X |
군대가 적에 맞서 싸웠는가 |
X | O |
나라를 버리고 도망쳤는가 |
O | O |
나라를 지키는 데 성공했는가 | X | 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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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의 내용처럼 북방인들이 노르망디를 정복하게 된 것은
나름대로 통일된 정치체제를 갖췄던 덕이 컸다.
[10~11세기 덴마크왕국 영토]
서로 분쟁이 없어지고 개발할 곳도 없으니 외부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왜 그들은 머나먼 프랑스땅까지 가게 되었을까?
몇 가지 이유를 함께 살펴보자.
1. 농사가 힘든 땅
북방인들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위도가 약 20도 이상 높은 굉장히 추운 지방에 살았다.
농사가 잘 안 되니까 낚시와 사냥이 발달했고
겨울에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고기나 물고기 말려먹는 데도 도가 텄다.
유사제품으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옆동네 스웨덴의 화학병기도 있다.
이런 건조고기의 장점은 냉장고 없이 던져놔도 오랫동안 안 상한다는 점이다.
북방인들은 고기통을 싣고서 일찍부터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었다.
(가는 길에 먹고 남은 빈 통에 털어온 곡물을 채우면 되니까 재활용도 잘했다)
2. 얼어붙은 동쪽과 북쪽의 바다
북방 바다엔 항해의 근본적인 제약이 있었으니,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바다가 겨울에 얼어버린다.
그래서 타이밍 잘못 잡으면 다음 여름까지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든지 여기저기 다 털어내든지 해야한다...
그렇다고 북쪽으로 가자니 해안선이 다 얼어버려서 북극가서 얼어죽기 딱 좋았다.
물론 이 글을 쓰는 2023년엔 안 어니까 배 타고 다니기에 세상 참 좋아졌다.
3. 남쪽의 동프랑크 왕국
중세 시스템 상 약한 애들 대충 털어도 왕이 바로 구하러 오긴 힘들었지만,
대놓고 붙어있는 나라를 치면 언젠가 보복당하기 딱 좋았다.
구실을 제공해버리기 때문에, 묵혀뒀다가 정복하고 싶을 때 써먹으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에 붙어있는 (왼쪽부터)
로타링기아, 동프랑크왕국, 폴란드왕국은 좀;;; 무서워서 못 때렸다.
4. 분열된 잉글랜드와 프랑스
영국은 나름대로 같은 왕국으로서의 인식도 있었고
왕이 힘도 어느정도 있었으나
귀족들의 경쟁이 너무 치열한 상황이었고
프랑스는 지도처럼 왕이 힘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게다가 둘 다 나라가 상당히 넓다 보니,
어디 공격당했다 그래서 영주들한테 군대 빌려다가 달려가면
이미 다 불타고 북방인들은 도망치고 없었다 -_-;
5. 항해술과 거점
북방인들은 여기저기 쏘다니다보니 뱃길이나 바람, 해류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그 덕분에 사람이 없는 섬 여기저기에 거점을 구축했다.
덕분에 브리튼 제도 주변에 배를 대고 쉴 수 있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던 것은
바람이 서쪽으로 불면 서쪽섬에 가서 쉬고
북쪽으로 불면 북쪽섬에 가서 쉬고
동쪽으로 불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됐다.
이외에도 여러 요소로 인해 북방인들이 프랑스에 놀러왔다 노르망디에 눌러앉게 됐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북방인들은 점차 잉글랜드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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