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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1.08 :: 팔랑크스 (Phalanx)
역사/서양 고대 2017. 11. 8. 16:59


팔랑크스는 고대 그리스나 마케도니아에서 사용되었던 진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단은 진법에 앞서서 그리스 군인들이 입었던 장비에 대해 알아야 할 텐데요. 위의 사진에 나와있는 나무방패(+청동조금), 청동갑옷(풀셋은 파노플리라고 부릅니다) + 두 번째 사진의 창(도리or도루)가 규격 장비였습니다. 다만, 어깨와 팔뚝 갑옷, 허벅지와 발목 갑옷은 비용 문제로 매우 드물었습니다. 또한 나라마다 국가에서 장비를 지급하는 경우와 개인이 구매해서 충당하는 경우로 달랐는데 스파르타와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유지보수까지 모두 개인이 충당하게 했습니다. 돈 문제 때문에 자연스럽게 당시 군인은 시민+중산층 이상이라는 조건이 붙는 일종의 명예직이 되었습니다. (이기면 약탈이 허용되었으니 오직 명예만 보고 참가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여담으로 말은 나중에 다루겠지만 외제차 가격이었습니다. 때문에 '고대 전쟁에서 말이 있다 = 귀족' 으로 봐도 대부분 무방합니다.



장비에 대한 설명을 조금 붙이자면 방패의 이름은 호플론이었고(여기서 호플리테스라는 중보병의 명칭이 등장합니다) 크기는 1M 정도였지만 당시의 작은 신장을 고려하면 얼굴~무릎까지를 가릴 수 있었습니다. 창은 도루라고 불렸는데 꼬리 부분에 사우로테르라는 이름의 찌를 수 있는 날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용도는 바닥에 꽂고, 오른팔 좀 쉬거나 뒤로 안 밀리게 버티는 것, 밀고 나가면서 쓰러져 있는 적의 확인 사살, 앞부분이 부러졌을 때의 보조 무기 정도였습니다. 칼은 크시포스라고 불렸으며 오늘날 주방에 있는 식칼 정도 길이에서 그 2~3배 정도까지 국가별로 다양했습니다. 애초에 이걸 쓰는 상황이면 진형이 무너졌다는 것이고, 그 뜻은 완패 혹은 완승이라 쓸 일은 별로 없었을 테지만요. 이전 문단에 돈 문제라고 언급했지만, 허벅지나 팔 쪽의 갑옷을 입지 않았던 또다른 이유는 방패로 막히는 데 굳이 그 비용을 들여봐야 사실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 아무튼 이런 장비를 갖춘 호플리테스들이 훈련을 받고 나면 위의 그림과 같은 멋진 팔랑크스진을 짤 수 있었습니다. 고증화라서 약간 왜곡이 있는데, 실제로는 뒷줄에서 방패를 왼쪽으로 든 게 아니라 앞으로 들고 동료를 밀어줬습니다.



영화 300이 이거 하나만큼은 그래도 꽤 열심히 고증을 했습니다. 방패가 눈에 띄고 판도 넓고 하니까 군인들이 각자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애초에 자기가 사는 거니까 튜닝 정도는 너무 어긋나지만 않으면 다 허용해줬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스파르타는 나라에서 공장식 생산으로 같은 것만 찍어냈습니다. 이렇게 같은 것만 찍어낸 공장식 생산이 효과를 본 게 역V자 마크가 그리스 알파벳으로 L인데 이것이 스파르타의 국명 Lakedaemon의 첫 글자라서 보기만 해도 적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기도 했다네요.


방패는 상당히 혁신적이었습니다. 왼팔을 가죽 끈 사이로 끼워넣고 끝 부분에 달려 있는 손잡이를 들게 되어 있어 잘 놓치지 않는 설계인 데다가 그릇처럼 볼록해서 왼쪽 어깨에 건 채로 다녔다고 합니다. 무게가 7~10KG이상 이라고 하니 손으로만 들면 몇 분 싸우지도 못 했을 겁니다. 그런데 왼쪽 어깨에 건다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방패가 원형이다 보니 나의 왼쪽 절반, 동료의 오른쪽 절반을 가리게 되는데 (위는 투구와 갑옷이 가려주고 아래는 사람이 너무 빽빽해서 찌를 정도로 팔을 뻗을 수가 없었습니다) 왼쪽에서부터 가려주면서 차근차근 정렬하면 그럼 가장 오른쪽 사람은? , 그대로 몸을 드러낸 채로 싸웠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팔랑크스의 가장 오른쪽 줄은 그 나라에서 가장 잘 싸우고 오래 살아남은 베테랑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반면에 왼쪽은 몸이 완전히 가려지니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로 채웠구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숙련도의 차이 때문에 실제로는 오른쪽이 전투를 리드했습니다. 베테랑은 창을 창으로 막고 찌르고를 하는데 신병들은 방패 뒤로 숨기에 급급해서 서로 오른쪽이 왼쪽을 점점 밀어내는 형태로 갔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일부 줄이 무너져 도망치면 그 균열에서부터 주변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앞이 비게 된 부대가 적의 측면을 후려쳐서 전체를 무너뜨렸습니다. 위의 그림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오늘날의 인식과 다른 점은, 갑옷이 튼튼하고 애초에 줄다리기랑 비슷한 원리로 싸우는 거라 패배해도 큰 피해가 없어서 다시 덤비고 다시 덤비고 하는 게 이론적으론 가능했습니다. 물론 이미 졌던 기억 때문에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나서 점점 더 빨리 무너졌을 겁니다.

 

실제 전쟁을 상상해 보시면 대략 감이 오시겠지만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 체력전이었습니다. 부딪힌 사람들끼리 서로 방패로 밀고, 뒤에서도 밀리지 않으려고 앞사람 갑옷에 대고 방패로 밀고, 옆과 이어진 방패의 벽이 무너지면 안 되기 때문에 서로 악착같이 줄도 지키면서, 그 와중에 오른팔 들어서 창으로 찌르고, 방패 나무부분에 꽂히거나 부러지면 손목을 돌려서 뒷부분으로 다시 찌르고, 그것도 없어지면 뒷줄에서 창 받아서 찌르고 (창길이가 2.5M라 앞의 두 줄만 공격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안 되면 수염이랑 머리채 잡아당기고, 저~ 뒤에선 돌 주워서 던지고 했답니다.


결론은 믿음을 기반으로 한 덩어리식 전술이었고 가장 약한 줄이 곧 그 군대의 실질적인 힘이었기에 훈련의 강도가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빡셀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위의 노란색 그림의 제일 뒤에 나팔을 불고 있는 사람은 일종의 지휘관인데 제대로 밀고 있는지 확인하고, 격려하고, 도망 못 가게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결국 아무리 훈련을 해도 전장에선 도망가는 사람이 나왔다는 뜻이겠죠.

 

실제 전장에서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증명되었듯이 장비가 차이나는 군대와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했으며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보조 병력과의 조합도 완성됩니다 // 전후방엔 투창병과 궁수 - 전방에서 몇 차례 사격 후 팔랑크스의 뒤로 돌아가 후방에서 지원사격, 중앙엔 팔랑크스, 양 날개에 기마대


그러나 오직 전진만을 위한 보병의 장비, 훈련 때문에 측면과 후방이 치명적으로 약하다는 단점을 보완해주던 기마대와 보조 부대가, 이후 비용 문제로 점차 축소되면서 서방에서 불세출의 명장 한니발에게 뿌리 깊은 영감을 받은 로마군에 의해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싸울 수 있다는 이 진형의 원리 자체는 근대에 기관총이 개발되기 직전까지 오랜시간 이어집니다.

  


출처는 제 상상, 구글링, 영문위키, 플루타르크 영웅전입니다.




posted by 미루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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