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임진왜란 개전 초기, 부산 - 상주 - 탄금대에 이르는 방어선이 죄다 붕괴되고 한양까지 적이 들이닥치자 선조는 고민 끝에 평양으로 도망칩니다. 하지만 적의 기세는 누그러들지를 않고 명의 원군도 언제 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조는 튼튼한 요새와 군사들이 있는 함경도 끝의 6진으로 도망가고자 합니다. 지도에 잘 보이실 지 모르겠지만 길이 멀기도 하고 험하기도 해서 피난지로는 적절했습니다. 그 때, 유성룡이 그걸 막아섭니다. 만약 거기까지도 왜적이 쫓아오면 야만인의 땅으로 피난을 가야 하는데, 그 위험한 길로 왕을 보낼 수도 없을 뿐더러 야만인에게 의탁하면 양반들이 뭐라 그러겠어요... 다시 말해, 여진족의 땅으로 넘어가는 순간 조선 왕조의 정통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선조는 마음을 돌려 명나라와 인접한 의주를 향해 피난을 갑니다. 선조의 왕비와 서열이 낮은 왕자는 6진으로 보냈습니다. 다행인지 위기인지, 한양 혹은 강원도에서부터 출발한 왜군에게 6진의 왕족들이 죄다 인질로 잡혀갑니다. 유성룡의 혜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무튼 의주로 가는 길에 펼쳐진 평야 지대의 곡식들이 각 고을의 관청에 쌓여 있었고, 일행은 간만에 배불리 먹으며 의주에 도착합니다.
한 편, 유성룡이 가는 길에 소를 어디선가 끌고 온 백성이 있어 고문을 해봤더니 왜군의 밀정이었습니다. (ㄷㄷ;; 여러모로 감각이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때는 평양성까지 함락당한 상태였는데 붙잡은 밀정 덕분에 그 때나마 지역 곳곳의 조선인 첩자를 싹 색출해서 눈에 잘 띄는 시장에 목 매달아 버립니다. 때문에 의주까지 치고 올라오려던 왜군은 정보가 갑작스레 끊겨버렸고 명군이 이미 왔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급제동이 걸려버렵니다. (당시 명군이라는 존재는 지금의 미군보다도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명의 사신 심유경이 슬그머니 혼자 와서는 "이보시게. 우리 명의 백만대군이 오고 있는데 맞설테요? 거 적당히 조공도 바치고 하면은 우리가 또 섭섭치 않게 대해줄 것인디..?" 하니까 회의하느라 성 안에 틀어박혀 버립니다. 여담으로 조선군이 쓰려고 모아놓은 식량이 평양성에 굉장히 많았는데 그 덕분인지 한동안 약탈도 하지 않았던 듯 합니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던 왜군은 조명 연합군의 손에 평양성을 빼앗기지만 벽제관에서는 명군을 막아내면서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집니다.
벽제관에서 왜군이 승리하면서 명군과 함께 한양을 협공하려던 권율은 행주 산성에서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바로 왼쪽에 한강이 흐르고 있어서 빠져나갈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절호의 기회에 각개격파를 노리고 공격해 온 왜군을 권율이 막아버렸습니다! 행주 산성은 상당히 조그마한 토성인데 평시엔 안 쓰고 위기시에 쓰는 성이라 관리도 안 되고, 안에 물자도 없고, 백성들도 살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조선군이 압도적인 전력차에도 덜컥 이겨버린 것입니다. 번외로 행주치마 설화가 있습니다만은 성의 규모나 종류상 아무래도 허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간도 없는데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백성이고 양반이고 모조리 도망치던 거 고려하면 아무래도 여성까지 동원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당시 남자들 성격상 여자들에게 바깥일을 시켰을 가능성도 전무하고요.
아무튼 명군의 개입 + 심유경의 배짱외교 + 행주대첩 3연벙을 맞고 왜군은 부랴부랴 경상도로 후퇴합니다. 슬프게도 가는 길에는 조선군이 이미 궤멸되어 버렸던 지라 학살을 엄청나게 자행했습니다. 진짜 알아보기 싫을 정도로 너무 끔찍하더군요. 그 때문인지 몰라도 오묘하게 이 시기가 수많은 의병들이 일어난 때이기도 합니다. 전면전을 행한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게릴라로 후퇴하는 왜군을 집요하게 괴롭혀 댔습니다. 결국 지친 왜군은 (제 추측입니다만) 심유경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평화협상이 깔끔히 끝나길 원하게 됩니다. (지난 글의 진주성 대학살이 딱 이 시점입니다) 그런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땅 절반+명나라 선물을 요구해버립니다 (...) 거기에 심유경은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 황제에게 '왜인이 조공국으로 받아만 준다면 물러간다 합니다.'라고 보고해 버립니다(...) 심유경은 나중에 보고가 거짓인 게 들통나서 머리가 잘려버립니다. 이렇게 평화협상이 애매하게 진행되는 동안 명나라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밍기적거리고 원균은 색시들이나 끼고 놀다가 칠천량에서 조선의 수군을 증발시켜 버리는데, 이것이 바로 정유재란의 도화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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