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글에 제승방략을 도입하고 막장 오브 막장을 향해 분노의 질주 중인 조선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제도의 오류로 인해 무슨 사단이 나는가를 구경해 보아야겠죠...
1510년에는 삼포왜란이, 1555년에는 을묘왜변이 터지면서 조선은 산소호흡기나 겨우 달고 있던 진관 체제를 버리고 제승방략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제도를 큰 전쟁에서 한 번만 적당히 시험해 볼 수 있었어도 참 좋았을텐데 기회가 없었습니다. 한동안 왜구 약간을 제외하고는 왜인들이 유순하게 잘 지냅니다. 그러다가 제승방략제는 유래가 없는 큰 규모의 20만명이 쳐들어온 임진왜란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됩니다.
전시체제가 바뀌건 말건 조선은 언제나 그렇듯 동아시아의 2등으로 명나라랑 같이 사이좋게 놀고 있었는데 1586~7 년 즈음해서 대마도인들이 일본왕 바꼈는데 걔네가 외교하고 싶어해염 하면서 접촉해옵니다. 당시 일본은 대략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군주였던 오다 노부나가 가문을 전복시키고(일본사는 잘 몰라서... 나중에 열심히 공부할게요 ㅠㅠ) 자신이 관백의 자리에 오른 상태였는데 상선비국 조선은 반역자들이랑은 외교 안 한다면서... 사신이고 뭐고 다 무시해 버립니다. 기세가 한껏 올라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무시당했다고 길길이 날뛰고 조선은 반역자와의 대화는 없다 하면서 긴장이 이어지는 와중, 가운데 낀 대마도만 새우등이 다 터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대마도는 그래도 끊임없이 사신을 보내면서 (귤강광이라고 4가지 없는 놈이 제일 유명하죠) 이 얘기 저 얘기 한 것 같은데, 조선 관리들도 슬슬 조짐이 이상하다는 것과 전운이 감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대마도가 평화의 상징인 공작 한 쌍을 보냈는데 기이한 새라고 조선은 숲에다 버렸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신의 계시였던 것 같습니다 ㄷㄷ;;
그래도 바닷길은 위험하다고 (지도상으론 거리가 얼마 안 되지만 무려 해협이 두 개나 가운데 있습니다. 거친 바다란 뜻이죠) 안 갈려는 거 대마도 사신이 직접 길 안내하겠다고 설득설득을 해서 1590년에 드디어 출발을 합니다. 그리고 11월쯤이 되어서야 히데요시랑 면담을 하고 (반란 잡으러 가 있어서 수도에서 기다렸습니다) 다음 해 2월에 조선에 돌아오는데 내용이 아주 가관인 것이... 히데요시 태도가 신하국 사신을 대하는 듯 했고, 왕보고 직접 와서 알현하라 그러고, 사신 알현 중에 자기 애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아주 무시무시를 했다고... 조선인들이 그 태도에 분개했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어쨌거나 상사 황윤길(서인)은 "확실히 쳐들어 올겁니다." / 부사 김성일(동인)은 "아뇨 저 미개한 것들이 어찌 건너오겠습니까 껄껄" 식으로 (실제로 저렇게 말했다는 게 아닙니다) 갈라져서 싸웠습니다. 일부 책에서 "당시 우세한 동인의 의견에 따라 황윤길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라고 서술하는 듯 하던데 실제로는 유성룡이 '성일아, 그거 틀리면 알지?' 하니까 김성일이 바로 '아니 그게 아니고, 혼란을 방지하고자...' 로 주장을 굽히면서 조선은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한편 명나라는 일본의 수상한 낌새를 이미 눈치 채고 조선측에서 연락이 없자, 조선이 같이 침공해 오는 거 아니냐고 내부적으로 걱정하고 있었는데 일본에 통신사 보내는 문제로 늦게나마 사신이 명나라에 당도하면서 그 의심은 일단락됩니다.
이 양반들이 책쟁이지만은 그래도 나름 머리는 잘 돌아가서 남동쪽 해안에 최강의 장군 하나 파견하려고 왕과 신하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는데, (결과론적으로 임진왜란이 터진 시기를 고려해보면) 관찰사가 가서 군량이라든지 병사들을 점검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촉박한 채로 이각이 임명되어 내려갑니다. (그리고 급하게 임명되어 그랬는지 능력치가 영;;; 거시기했습니다) 그 후, 성 점검을 하면서 성벽,해자 보수도 하고 새로 벽도 쌓고 하는데 농민,아전,양반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평화 시에 뭔 짓거리냐고 제대로 협력을 안 합니다. 그래도 선조가 이 때까지는 어릴 때 평가 그대로 '총명하고 지혜로운' 왕이었던지라 이순신, 유성룡, 신립 등(평가 좋고 성과 있는)의 직위를 신하들이 반대하는 것을 무시하고 하던 대로 (예전부터 전쟁 날까봐 불안하다고 이런 식의 인사를 했습니다) 급속 승진을 시켜줍니다. (덕분에 이순신의 전설이 나올 판은 마련되었으니 선조도 나름대로 사람 보는 눈은 있었습니다.) 아무튼 조선이 나름의 준비를 하는 동안 2년간 3번에 걸쳐 흰 무지개가 햇무리를 거쳐 해를 꿰뚫었고 (흰 무지개 - 다양한 색이 하나로, 통일된 일본 / 햇무리 - 태양을 감쌈, 조선 / 해 - 천신, 명나라) 선조의 처소에 괴짐승이 나타나는가 하면 숲에서 오색조가 날아다니는 등 여러모로 괴이한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1592년 4월에는 일본인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사라지더니 13일에 일본군이 부산진에 상륙합니다. 부산진의 조선군은 최선을 다해 대비를 했었습니다만 평소의 수십~수백명이 아닌 뜬금없는 20만 가까이
밀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수백명의 경비대 수준이었던 정발과 부산진 군사들이 몇 시간 버텨내지도 못 하고 전멸합니다.
뒤이어 벌어진 동래성 전투에서 부사 송상현은 악착같이 어금니 물고 버텨보았습니다만 기어이 왜군들이 성벽을 넘었고, 관청에서
업무복으로 갈아입은 뒤 정자세로 앉은 채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왜군도 감동해서 송상현의 시신은
잘 묻어주고 묘비도 하나 세워주었다고 합니다. 육전에서 이런 멋진 영웅들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초반부의 영웅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ㅁ-;;
내용출처는 유성룡의 징비록, 조선왕조실록:선조편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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