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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11 :: 임진왜란 9 - 정유재란과 종결
역사/조선 2017. 10. 11. 12:37



왜군은 다시 한 번 기세 좋게 아랫지도의 노란 길을 따라 밀고 올라갑니다. 전라도 교통의 요지인 남원성을 뚫고 전라도를 휩쓸고 다니면서 지금의 천안인 직산까지 쾌속 진격합니다. 호남평야의 입구로, 곡창지대의 관문이라 불리던 전주성의 수비병력은 어김없이 죄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명군의 활약으로 한양을 앞둔 최후의 길목인 직산에서 왜군은 발목이 잡히고 맙니다. 이제 겨울은 다가오고 은은히 풍겨오는 명량의 바닷내음에... (왜군 입장에선 그놈의 이순신이겠죠) 때마침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린 도요토미 히데요시까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왜군은 이대로는 살아서 못 나가겠다 싶어서 왔던 길 그대로 재빨리 되돌아 나갑니다.

부랴부랴 항구에 도착해서 배타고 나가려니까 또 그놈의 이순신이 전라남도 순천왜성에 주둔 중이던 고니시를 개박살냈다는 비보를 접합니다. 당시 항해술로 순천에서 일본으로 대규모 함대가 직항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고 부산 - 대마도 - 일본 루트를 거쳐야 했기에, 고니시를 구하려고 부산으로부터 약 500척의 함선에 60,000여 명의 병력이 순천항으로 서둘러 달려갑니다. 이순신은 노란 x가 된 곳 근처에 명군을 숨겨두고 그들을 슬쩍 보내줬습니다. 그러다 여수 오른쪽의 좁은 곳으로 왜 수군이 들어오자마자 앞길을 막고는 대포알을 종류별로 대접합니다. 그 놈의 이순신.. 그 놈의 이순신!!! 하며 왜군은 이순신의 대장선 (어떻게 알아보았냐하면 동서양 막론하고 전통적으로 가장 크고 화려한 배에 대장이 탔습니다) 에만 집중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추가로 조선군의 뒤에선 고니시가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고, 왜군의 뒤에선 명군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치며 바다 위에 온갖 군함들이 엉겨붙어 난전을 새벽부터 수시간동안 이어갑니다. 200척 가까이가 완파되고 그와 비슷한 수가 더 이상 배로 기능할 수 없게 된 왜군은 약 150척만이 살아남아서 부산쪽인, 명군이 있는 방향을 악착같이 뚫고 도주합니다. 그걸 또 그 놈의, 그 놈의 이순신이 뒤쫓아오면서 하나 둘씩 계속 까부숴 버렸습니다. 결국 점심 때까지 이어진 추격전에서 10%도 안 되는 약 50척 만이 무사히 노량을 빠져나갔으며 조명 연합군은 100척 이상의 적선을 나포하고 근 400척 가까이를 격파하는 대승을 거둡니다. 명 수군 제독 진린이 기뻐하며 이순신의 대장선에 뛰어올랐을 때, 장군은 이미 방패의 벽 안에서 '전투가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진린은 세상을 잃은 것처럼 주저 앉아서는 목 놓아 통곡했다고 합니다. ㅠ.ㅠ 일반 병사들이 울고불고 한 것은 이루말할 것도 없었죠. 심지어는 '장군님마저 가시면 이제 저희는 누가 지켜주신단 말입니까!' 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이게 왕보다 장군을 우선하는 뉘앙스라 까딱하면 목 잘리는 대사입니다. 그 정도로 큰 신뢰를 받고 있었다는 뜻이겠지만요.

진린이란 장수를 간략히 소개하고 넘어가자면 공적과 재물을 탐하고 능력은 그리 우수하지 않았던 자인지라 (명나라판 원균 떠올리시면 쉬울 듯 합니다) 이순신을 처음엔 시샘했습니다. 그런데 이순신이 왜적을 잡아놓고 그걸 명 수군의 공으로 보고하고, 선물도 주고 하니 완전히 사생팬으로 변해선 하자는 건 다 하고 명령도 척척 잘 듣는 좋은 장군이 되었습니다. -ㅅ- 아무튼 흔히들 말하는 자기 배 부른 것 밖에 모르는 무능력이가 싸움에 열심히 참가하고, 공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던 것을 보면 이순신이 사람 다루는 데도 참 대단했습니다.

이순신의 추격까지 더해지며 잃은 함선과 병력의 손실이 너무 컸던 탓인지 통일 일본은 다시는 조선을 침공할 엄두조차 못 냅니다. 아니. 멸망해버립니다. 말이 통일이지 히데요시 주도의 연합국가 개념이었는데 히데요시의 병력이 거의 몰살당해버렸으니 어쩌면 당연했을 겁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뤄보겠습니다.


그러나 조선 국토는 30%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황폐화되어 버렸으며 굶어 죽는 이가 속출하고 산 속에 숨어버린 자도 셀 수가 없는 지경이라 인구는 거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해버렸습니다. 이어진 병자호란으로 치명상을 입은 조선은 동아시아의 강국에서 고래 사이의 등 터지는 새우로 빠르게 쇠퇴합니다. 일본은 이 시기 약탈 + 장인 납치 + 조선통신사 등등으로 중세 문화가 활짝 꽃피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어받은 통일 왕국은 황금기를 구가합니다.

다들 잘 아시듯이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관해서는 의문이 꽤 있는 편인데 한산도에서 일점사를 그렇게 당해도 안 돌아가시던 분이 덜컥 추격 중에 돌아가셨으니 그런 의혹이 나올 만도 합니다. 유언만 겨우 남기고 사람이 즉사할 정도로 당시 해전에서 치명적인 총탄을 맞기가 매우 어려웠기도 하고요. 유명한 음모론 대로, 당시 조선 수군이 조총을 다량 확보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바로 옆의 군관에게 자신을 쏘아달라고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역사에 드물 정도로 나라를 끔찍이 사랑하신 분이셨으니 자신의 존재가 조선 왕조에 심대한 위협이라는 것도 잘 알고 계셨을 겁니다.

당시 선조의 정통성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는 커녕 도망다니기 급급하고, 백성들에겐 성에 함께 남겠다고 공언하고서 혼자 빠져나가는 등 신뢰도가 아주 밑바닥인 데 반해서 이순신, 권율, 곽재우 등의 전설적인 영웅담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감지한 것인지 평양에서 한 때, 명나라의 실질적인 변방국이 되고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라는 천자의 명에 승낙의 뜻을 전하는 글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심유경의 허풍외교 때문에 전쟁이 재개되면서 다행히도 무산되었는데 하마터면 300년 일찍 나라가 망할 뻔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이후로 인간 불신적인 경향을 많이 보여줍니다. 유성룡도 강등시키고 이순신도 파직시키고 주변의 누구든 일단 의심해 버립니다. 심신이 하도 시달려서 어느 정도 안정기에 돌입하자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후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을 때, 자신을 지지하던 유성룡은 유배되어 죽었고 이순신도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물론, 자신을 지지하던 기반은 선조에 의해 거의 초토화되어 있었습니다. 모두 선조의 책임이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선대의 삽질이 유의미하게 영향을 끼쳤음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해신 이순신과 천리안 유성룡이 죽고 애국충정의 여러 의병장들도 헛되이 죽었으며 어린 시절 총명했던 선조는 의심병에 걸렸고 국토도 백성도 죄다 불타버린 슬픈 전쟁 임진왜란이었습니다.

posted by 미루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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