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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21 :: 진관[鎭管]과 제승방략[制勝方略]
조선 초기엔 고려시대에서 이어져 온 방위 체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북방의 국경선에 익군, 남방에 영진군을 두어 침입해 들어오는 것 자체를 막아내는 걸 목표로 하는 체계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경선이 뚫리는 순간 수도의 근위대를 제외하고는 군인이 아예 없어서 언제든지 대참사가 발생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죠. 그래서 1450년대 세조의 통치 하에 개편에 개편을 거쳐서 군익도 체제 -> 진관 체제가 완성되는데 이것은 전국 각 지역을 대단위(주진), 중단위(거진), 소단위(제진)으로 나누어서 주진의 감독 하에 각자 알아서 방위를 담당하게 하는 제도였는데 군사력의 혁신적인 강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당장에 병사 숫자의 단위가 아예 달라진 데다가 십수 명의 유목민이나 왜적이 약탈하러 오는 경우에 수백명씩 끌려 다닐 필요 없이 고을 경비대 수십 명이 막아내게 되었으니 효율성 면에서도 압도적이었죠.
하지만 평화가 전쟁을 잊게 만든다고 하던가요. 로마 속담에서는 '평화 시에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고요. 진관 체제는 유사시를 대비한 훈련, 전시 지방의 방위 외에도 주기적으로
한양에서 중앙군으로서 복무(중앙에서 다시 북쪽에 파견 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많이 추웠을 겁니다;; 그래서 전래동화 중에 꽃분이이야기인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걱정되는 남편에게 맛있는 걸 싸들고 간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ㅠㅠ)를 해야했는데 중앙에서 복무를 하고 나서도 지방에서 부역을 또 맡아야 해서 백성들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복무를 좀 줄이면 될 걸 가지고 관리들은 책상머리에서 토론 끝에 군역 대신 옷감을 세금으로 내도록 하는 방군수포제라는
걸 꺼내놓습니다.
방군수포제 실시 이후 처음엔 세수도 확보되고 부담도 덜어주는 듯 했습니다만 이놈도 폐단을 발생시킵니다 =ㅅ=... 변호하자면 관리들이 현실을 전혀 모를 수 밖에 없는 게 양반 계층은 법적으로는 군역을 져야했으나 실제로는 특권층이라 안 갔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각 진의 수장, 그러니까 마을 수령이나 관찰사 이런 사람들이 지휘관(=맘대로)으로 있는 곳에서 애초에 양반 자제들을 그 힘든 군역 지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니 어떤 의미에선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윗사람 눈치 안 보고 막 보내다가 무슨 화를 당할 지 어찌 알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지방군 사령관은 겸직의 개념이라 봉급이 없었는데... 그들이 보너스 타는 법을 깨닫게 됩니다. 병사를 강제로 전역시키면서 옷감을 내도록 하거나 정해진 옷감만 내라고 협박하면서 지방 상인하고 짜고 치는 겁니다... 원래 옷감(포)이 직접 만들거나, 하나에 쌀 반말 정도면 되는 가치인데 그걸 쌀 5말에 물고기랑 약초도 좀 얹고 해야 팔아주는 상인들과 손을 잡아버린 겁니다. 탐관오리가 따로 없죠. 그러나 명칭이 '역'이니만큼 세금을 내는 사람에 한해서만 징수가 가능했는데 백성들이 방군수포제 속에서 점점 가난해지다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지주층에게 땅을 팔고 노비 신분으로 들어가 버리는 게 가속화되면서 아예 군역 대상자 자체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점점 서류 상엔 군인이 있는데(양반 등등) 실제론 군인이 없는(양민->노비) 기현상이 발생합니다. 다들 경제력이 되면 세금을 내고, 안 되면 노비가 되어 군역은 안 지게 되었습니다. (이래놓고 부역(=나라의 공사)은 또 지고 있었다는 게 함정이긴 합니다. 이렇게 겹쳐대니 노비가 안 되고 버틸 수가 없었겠죠) 이대로 가면 언젠가 심각하게 터질 문제였는데 그나마 다행히도 임진왜란 전인 1510년의 삼포왜란과 1555년의 을묘왜변을 계기로 방위 체제가 제승방략 체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제승방략은 유럽으로 따지면 고대 그리스식 전략입니다. 각지의 병사를 한 군데 모아서 중앙에서 임명한 사령관이 그들을 통솔해 적을 일전에 격파해버리는 겁니다. (그리스에 비해 규모가 좀 많이 커졌지만요) 이 전략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항상 많은 군사수가 보장되고 가장 유능한 사령관에 의해서 통솔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은 (평화가... 정신을... 좀먹는다... 으어어어) 수령들이 워낙에 유학공부만 하고 있다보니 전쟁에 너무나 무지해서 훈련을 아예 경시했고 (수백년간 훈련이 사실상 없어왔으니...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습니다) 문관만 마구 배출되는데 이들을 통솔할 만한 장군감이 존재해 봐야 북방 전선에 극소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론적인 토대와는 유리되어 군사 자체는 많이 소집할 수 있었습니다만 페르시아군, 당나라군 같은 오합지졸들인 데다가 제대로 된 전술을 구사할 줄도 모르는,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목각인형 급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소규모 전투에서는 그럭저럭 성과를 발휘해서 유지되었으나 1592년 4월, 임진왜란 당시에 직업군인들로 이루어진 해안선 방위대 외에는 전투다운 전투도 못 해보고 패퇴하고, 간신히 상주 근방에 병사들이 모였으나 중앙의 장군이 늦게 도착해 한 번의 전투도 없이 와해되어 버리는 등의 개판에, 당대의 명장 신립과 조선이 영혼까지 끌어모은 정규군이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털리고, 평양까지 신칸센이 설치되는 걸 보고 나서는 조선에서도 이 체제를 포기하게 됩니다...
책쟁이들 바부...
출처는 제 머릿속 나름의 군사지식 + 네이버 지식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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